맥도널드식 교회
필자는 피자를 좋아하여 종종 피자가게를 찾는다. 간혹 햄버거가 당길 때도 있다. 맥도널드 햄버그를 먹기 위해서는 노란색 로고 간판을 붙인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를 찾아가면 된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의 서울이나 러시아의 모스크바나 마찬가지이다. 고객들은 빅맥 버그와 감자칩과 코카콜라를 주문하여 맛있게 먹는다. 지구상의 맥도널드는 어디에서나 비슷한 분위기와 같은 맛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맥도널드식 경영이다. 상품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하여 신속하게 서비스를 하는 고백중심의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론 연구에 있어 맥처치(Mc Church)라는 개념이 있다. 즉 교회가 맥도널드식 경영을 하는 비지니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맥처치적 교회 운영이란 교회가 종교상품 혹은 프로그램, 영성 비지니스 등을 회중들의 선호도가 검증된 표준적 규격으로 개발하여 교회를 운영하고, 나아가 지교회를 만들어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브랜치를 확장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대형교회의 지교회 확장, 지역교회들을 삼키는 방식의 문어발식 확장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세련된 맥처치는 대개 영성과 프로그램, 예배의 감동, 깔끔한 설교와 감성적 접근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 그리고 각 세대별로 그 문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예배를 디자인하고, 예배와 프로그램에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구사하고, 영상과 음향과 조명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탁월한 무대효과를 추구한다. 이는 현대인의 문화와 정서에 매우 효과적이다. 때로는 이러한 접근이 문화적 장벽 때문에 교회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고 생각되어 왔다. 사실 이들 교회는 영성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건물과 주차장 등 시설도 백화점 혹은 호텔의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여 매우 편리하고 고급스럽다. 더글러스 웹스터는 그의 책 Selling Jesus에서 이러한 현상은 구매자인 청중이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하나님의 뜻은 쓸데없는 것으로 배제하는 세속적인 현상이라고 비판한다. 즉 성경의 가르침이나 깊이 있는 신학적 성찰보다는 대중의 취향과 선호도와 만족을 우선적인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1960-80년대의 선발 대형교회들은(여의도순복음, 영락, 충현, 소망, 광림, 금란 등) 한국사회의 이농 현상과 서울의 메트로폴리스화와 인구밀집이라는 물리적 배경 속에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영성과 설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들 교회의 경우 한국교회의 성장기와 맞물려 형성되었으므로 그 성장기에는 회심 신자의 비중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1990년대 이후 구축된 후발 대형교회들은(온누리, 사랑의, 지구촌, 호산나, 벧엘, 분당우리 등등)은 강남과 신도시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뛰어난 목회적 감각을 갖춘 목회자의 영감있는 설교와 고급스러운 프로그램, 찬양과 영상 시스템 등을 동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당시 풍미하였던 교회성장학과 교회 마케팅 전략들을 활용하였다. 전자들은 이농과 강남개발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후자들은 강남과 신도시 개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자들은 이농한 농촌교회 신자들과 수도권으로 진입한 지방교회 교인들을 주력군으로 하여 전도를 통해 성장하였고, 후자들은 신도시로 이주한 타교회 교인들을 주력군으로 하여 전적으로 수평이동을 통해 성장하였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대개 후발대형교회군의 회심교인 비율은 1-2%미만이라고 한다. 전자들은 전근대성을 기반으로 근대성을 덧입으며 체계화되어 갔으며, 후자들은 근대성을 기반으로 포스터모던적 요소를 체득하며 성장하였다.
주목할만한 것은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이 지성전 시스템화 혹은 브랜치 교회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라는 것이다. 이는 선발대형교회군과 후발대형교회군의 놀라운 공통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터넷과 영상 기술의 발달, 교통수단의 발전, 그리고 대형교회의 자본력이었다. 인터넷 영상설교로 브랜치교회의 교인들이 예배 드리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모든 대형교회들은 각 도시와 지방에 자기 교회의 이름을 단 브랜치 교회들을 세우고 브랜드화하기 시작하였다.선발대형교회들도 타교회 교인들을 흡수하는 수평이동을 통해 증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한국교회가 정체기가 시작되어 회심 교인이 희귀해진 현실과, 자본주의적 고객마인드에 익숙해진 기성 교인들이 기호에 따라 교회를 선택하는 문화가 큰 몫을 하였다. 보다 만족스럽고 익명성이 보장되고 심리적 부담이 적은 큰 교회들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였다. 네트워크의 방식과 장악력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대형교회들은 성장의 신화를 이루어낸 지도자와 공유된 교회 이름이라는 브랜드라는 상징 안에서 사실상 본사-지사 체제가 가동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대형교회들은 예외없이 마케팅적이다.
게 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맥처치의 사례는 온누리교회이다. 지구촌 어느 브랜치 교회에 가더라도 비슷한 분위기와 동일한 프로그램과 영성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리고 본사인 서빙고 온누리가 전세계의 모든 브랜치 교회들에 대한 제도적인 통제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가동하고 지휘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온누리교회라는 시스템이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온누리가 맥처치의 전형이라면 모든 대형교회들은 예외없이 프랜차이즈 교회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메가처치의 특징
한동안 해외생활을 할 때 릭 워랜 목사의 새들백 교회를 종종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교회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백인 중산층을 대상으로 치밀하고 성실하게 전도하여 교인들의 대다수가 회심한 신자로 이루어진 초대형교회였다. 재즈 음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열린 예배와 단순하고 논리적인 설교와 심플한 프로그램은 전세계의 교회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교인들의 만족도와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 보였고, 아프리카와 지역 공동체를 위해 교인들이 섬기도록 세밀하게 도전을 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에서 대형교회들이 나름의 많은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의 대형교회들은 미국 사회와 지역 커뮤니티 속에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한국의 대형교회의 성장은 한국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그 개교회의 성장으로만 이어지는 교회 이기주의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교회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불신자들을 전도하기 위한 효과적인 문화적 접근의 일종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형교회에서 교인들의 절대다수는 타교회 교인들이 이동하여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다. 회심교인 비율은 극도로 빈약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의 수도 극소수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불신자들을 향하였다기보다 기존의 교인들을 흡수하는데 주력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로운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밭의 곡식들을 이식하는 것이요, 벽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벽돌을 다른 데로 옮기는 것이다. 이를 양도둑질(stealing sheep)이라고 거칠게 비판하는 서구 신학자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대형교회가 전도와 교회의 성장에 기여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대형교회는 중소형교회의 물락을 가속화시키고 교회의 하나됨과 선교의 동력을 떨어뜨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선교에 역작용을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단지 대형화가 아니라 그 교회들이 지닌 인적 재정적 힘이 교회의 권력화와 종교재벌화로 이어진다는 특이한 점이 있다. 즉 비도덕성을 특징으로 한다. 단지 대형화나 물량화나 수평이동현상이 문제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극도로 추락시키는 그 중심부에 대형교회들이 있다. 세습, 스캔들, 재정 비리, 정치적 편향 등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으면서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추락시켜 바닥에 이르게 하고 복음전도의 문을 막아 이제 한국교회 쇠락과 추락의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피자를 좋아하여 종종 피자가게를 찾는다. 간혹 햄버거가 당길 때도 있다. 맥도널드 햄버그를 먹기 위해서는 노란색 로고 간판을 붙인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를 찾아가면 된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의 서울이나 러시아의 모스크바나 마찬가지이다. 고객들은 빅맥 버그와 감자칩과 코카콜라를 주문하여 맛있게 먹는다. 지구상의 맥도널드는 어디에서나 비슷한 분위기와 같은 맛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맥도널드식 경영이다. 상품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하여 신속하게 서비스를 하는 고백중심의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론 연구에 있어 맥처치(Mc Church)라는 개념이 있다. 즉 교회가 맥도널드식 경영을 하는 비지니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맥처치적 교회 운영이란 교회가 종교상품 혹은 프로그램, 영성 비지니스 등을 회중들의 선호도가 검증된 표준적 규격으로 개발하여 교회를 운영하고, 나아가 지교회를 만들어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브랜치를 확장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대형교회의 지교회 확장, 지역교회들을 삼키는 방식의 문어발식 확장이 바로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세련된 맥처치는 대개 영성과 프로그램, 예배의 감동, 깔끔한 설교와 감성적 접근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 그리고 각 세대별로 그 문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예배를 디자인하고, 예배와 프로그램에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구사하고, 영상과 음향과 조명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탁월한 무대효과를 추구한다. 이는 현대인의 문화와 정서에 매우 효과적이다. 때로는 이러한 접근이 문화적 장벽 때문에 교회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고 생각되어 왔다. 사실 이들 교회는 영성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건물과 주차장 등 시설도 백화점 혹은 호텔의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여 매우 편리하고 고급스럽다. 더글러스 웹스터는 그의 책 Selling Jesus에서 이러한 현상은 구매자인 청중이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하나님의 뜻은 쓸데없는 것으로 배제하는 세속적인 현상이라고 비판한다. 즉 성경의 가르침이나 깊이 있는 신학적 성찰보다는 대중의 취향과 선호도와 만족을 우선적인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1960-80년대의 선발 대형교회들은(여의도순복음, 영락, 충현, 소망, 광림, 금란 등) 한국사회의 이농 현상과 서울의 메트로폴리스화와 인구밀집이라는 물리적 배경 속에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영성과 설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들 교회의 경우 한국교회의 성장기와 맞물려 형성되었으므로 그 성장기에는 회심 신자의 비중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1990년대 이후 구축된 후발 대형교회들은(온누리, 사랑의, 지구촌, 호산나, 벧엘, 분당우리 등등)은 강남과 신도시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뛰어난 목회적 감각을 갖춘 목회자의 영감있는 설교와 고급스러운 프로그램, 찬양과 영상 시스템 등을 동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당시 풍미하였던 교회성장학과 교회 마케팅 전략들을 활용하였다. 전자들은 이농과 강남개발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후자들은 강남과 신도시 개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자들은 이농한 농촌교회 신자들과 수도권으로 진입한 지방교회 교인들을 주력군으로 하여 전도를 통해 성장하였고, 후자들은 신도시로 이주한 타교회 교인들을 주력군으로 하여 전적으로 수평이동을 통해 성장하였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대개 후발대형교회군의 회심교인 비율은 1-2%미만이라고 한다. 전자들은 전근대성을 기반으로 근대성을 덧입으며 체계화되어 갔으며, 후자들은 근대성을 기반으로 포스터모던적 요소를 체득하며 성장하였다.
주목할만한 것은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이 지성전 시스템화 혹은 브랜치 교회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라는 것이다. 이는 선발대형교회군과 후발대형교회군의 놀라운 공통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인터넷과 영상 기술의 발달, 교통수단의 발전, 그리고 대형교회의 자본력이었다. 인터넷 영상설교로 브랜치교회의 교인들이 예배 드리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모든 대형교회들은 각 도시와 지방에 자기 교회의 이름을 단 브랜치 교회들을 세우고 브랜드화하기 시작하였다.선발대형교회들도 타교회 교인들을 흡수하는 수평이동을 통해 증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한국교회가 정체기가 시작되어 회심 교인이 희귀해진 현실과, 자본주의적 고객마인드에 익숙해진 기성 교인들이 기호에 따라 교회를 선택하는 문화가 큰 몫을 하였다. 보다 만족스럽고 익명성이 보장되고 심리적 부담이 적은 큰 교회들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였다. 네트워크의 방식과 장악력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든 대형교회들은 성장의 신화를 이루어낸 지도자와 공유된 교회 이름이라는 브랜드라는 상징 안에서 사실상 본사-지사 체제가 가동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대형교회들은 예외없이 마케팅적이다.
게 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맥처치의 사례는 온누리교회이다. 지구촌 어느 브랜치 교회에 가더라도 비슷한 분위기와 동일한 프로그램과 영성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리고 본사인 서빙고 온누리가 전세계의 모든 브랜치 교회들에 대한 제도적인 통제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가동하고 지휘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온누리교회라는 시스템이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온누리가 맥처치의 전형이라면 모든 대형교회들은 예외없이 프랜차이즈 교회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메가처치의 특징
한동안 해외생활을 할 때 릭 워랜 목사의 새들백 교회를 종종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교회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백인 중산층을 대상으로 치밀하고 성실하게 전도하여 교인들의 대다수가 회심한 신자로 이루어진 초대형교회였다. 재즈 음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열린 예배와 단순하고 논리적인 설교와 심플한 프로그램은 전세계의 교회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교인들의 만족도와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 보였고, 아프리카와 지역 공동체를 위해 교인들이 섬기도록 세밀하게 도전을 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에서 대형교회들이 나름의 많은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의 대형교회들은 미국 사회와 지역 커뮤니티 속에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한국의 대형교회의 성장은 한국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그 개교회의 성장으로만 이어지는 교회 이기주의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교회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불신자들을 전도하기 위한 효과적인 문화적 접근의 일종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형교회에서 교인들의 절대다수는 타교회 교인들이 이동하여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다. 회심교인 비율은 극도로 빈약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의 수도 극소수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불신자들을 향하였다기보다 기존의 교인들을 흡수하는데 주력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로운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밭의 곡식들을 이식하는 것이요, 벽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벽돌을 다른 데로 옮기는 것이다. 이를 양도둑질(stealing sheep)이라고 거칠게 비판하는 서구 신학자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대형교회가 전도와 교회의 성장에 기여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대형교회는 중소형교회의 물락을 가속화시키고 교회의 하나됨과 선교의 동력을 떨어뜨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선교에 역작용을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단지 대형화가 아니라 그 교회들이 지닌 인적 재정적 힘이 교회의 권력화와 종교재벌화로 이어진다는 특이한 점이 있다. 즉 비도덕성을 특징으로 한다. 단지 대형화나 물량화나 수평이동현상이 문제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극도로 추락시키는 그 중심부에 대형교회들이 있다. 세습, 스캔들, 재정 비리, 정치적 편향 등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으면서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추락시켜 바닥에 이르게 하고 복음전도의 문을 막아 이제 한국교회 쇠락과 추락의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