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글은 중앙일보 미주본부, 장열기자와 존 맥아더 목사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기자; "현대교회가 무엇을 잃었는가?"
목사; "성경이다. 교회가 사수해야 할 절대적 가치다. 지금 당면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성경적이어야 한다."
기자; "성경으로 돌아 가려면?"
목사; "모든 문제는 <성경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문화와 사회가 교회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묻기보다 먼저 예수가 교회를 향해 무엇을 원하는가를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기자;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심각하다."
(기자가 <한국기독교 실천운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19.4%로 나왔다고 말하자, 당연한 결과라며 수긍했습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최근 상황도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으며 조용기목사의 탈세 및 배임에 대한 재판이야기도 먼저 꺼냈습니다. 조목사의 '비성경적'부분도 이미 설교에서 언급한적이 있다고 했다.)
목사; "그건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기자; "교회는 왜 몸짓에 치중하는가?"
목사; "우선 진실한 교회(true church)의 개념은 포스트 모던사회와 상충된다. 지금은 성경이란 절대 권위가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사회는 점점 개인화되면서 '나' 만의 세상, 가치, 영성 등을 만들어 낸다. 물질주의에 기반한 소비자적 개념과, 상대적 가치를 바탕으로 개인이 신념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시대가 됐다. <결국 교회는 그 흐름을 쫓다가 세상과 구별되지 못했다>
이제 미국은 기독교의 가치를 잃었다. 그걸 잃는데 200년이 걸린 셈이다. 과거 미국은 기독교가 사회와 문화를 뒷바침했다. 하지만 '기독교 중심국가'란 말이 점점 '기독교적인 문화국가'로 바뀌다가, 이제는 신이교주의(neo-paganism)의 개념으로 까지 변절됐다. 한국은 그 과정을 밟기도 전에 끝난듯하다.
기자; "끝났다는 의미는?"
목사; "한국은 짧은 기독교역사 가운데, 급작스레 교회가 커지면서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 결과 기독교적 가치는 내부적 또는 사회적으로 정착되기도 전에 교회는 힘과 권위만 갖게 되었다. 그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한국교회는 포스트모던이즘의 급격한 물결에 휩쓸리며 <본질을 잃어 갔다.>"
기자; "한국엔 3억달러(약3000억원)짜리 교회가 세워 졌다.
(최근 한국교계의 이슈였던, 오정현목사의 박사학위 논문표절과 서울의 사랑의 교회 건축논란을 설명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정말3억달라가 맞느냐며 몇 번이고 되묻다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 "기독교엔 지금 거대한 건물들이 너무 많다. 대개 교회확장은 목사의 개인적 야심과 연결된다. 많은 경우 목사의 자아가 교회의 크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3억짜리 교회건물을 세우려 했다면 반드시 동기를 철저히 진단하고 성경에 비추어 자신에게 강력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거기다가 만일 학위를 표절로 얻었다면 그의 야심적 성향에 대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기자; "비성경적이란 뜻인가?"
목사; "현재 한국의 물가나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어느 정도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 건물을 지었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가, 차라리 그 돈으로 세상 구석구석에 복음을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용했더라면… 정말 심란하다."
기자: 최근 한인 교계에선 목회자 청빙도 문제였다.
(청빙이 물밑에서 진행되는 점,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인사도 없이 떠나는 행위, 목회자의 상향이동 등 한인교계의 논란 사례를 설명했다.)
목사: "미국 교계도 똑같다. 양떼의 중요성보다 목회자의 개인적 상황이나 야망이 앞서면 그렇게 된다. 어느새 목회자가 왕 또는 유명인사가 되다 보니 교인들도 그런 목사를 찾는다. 바른 청빙은 목회자와 회중들, 청빙한 교회가 투명한 과정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다가 모두가 기쁘게 동의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는 사도행전 20장을 토대로 바울이 모두의 축복 속에 에베소 장로들과 울며 입을 맞추고 떠나는 모습을 예로 들었다.)
기자; "목자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목사; "넓이보다 깊이다. 대형교회건물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더라도 목사의 언변, 영리함, 처세술 등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양 떼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며, 복음 안에서 갖는 깊이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일에 있다"
기자; "한국교회는 젊은 층이 줄고 있다. 이유는?"
목사; "교회는 그들에게 이벤트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단순히 흥미로운 성경이야기가 아닌 교리를 통해 아이 때부터 복음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갖도록 교회와 가정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건 분명히 너무나 힘든 도전이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더욱 막중한 시대가 됐다."
기자; "젊은 층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목사; "교회가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일에만 치중했다.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복음을 최소화 시킨다면, 언젠가 그들은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질문과 함께 회의와 마주하게 된다. 얼마든지 자기 입맛에 맞는 가상의 세계와 상대적 가치를 창조해 내는 젊은 세대에게 '기독교는 세상과 역행해야 하며 교회가 허구가 아닌 진리와 실제적 삶을 나누는 곳임을 알려줘야 한다."
기자; "사람들이 자꾸 교회를 떠나는데?"
목사; "그 질문은 일단 교회에는 진정한 성도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진정한 성도는 바른 교회를 찾아 다닐 수는 있어도 완전히 떠날 수는 없다. 다만 예수를 잘 모르고 성경으로 양육 받지 못했다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부터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본질에는 관심이 없었던거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말> 또는 <알아야 할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해준 결과다."
기자; "현대교회가 무엇을 잃었는가?"
목사; "성경이다. 교회가 사수해야 할 절대적 가치다. 지금 당면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성경적이어야 한다."
기자; "성경으로 돌아 가려면?"
목사; "모든 문제는 <성경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문화와 사회가 교회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묻기보다 먼저 예수가 교회를 향해 무엇을 원하는가를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기자;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심각하다."
(기자가 <한국기독교 실천운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19.4%로 나왔다고 말하자, 당연한 결과라며 수긍했습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최근 상황도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으며 조용기목사의 탈세 및 배임에 대한 재판이야기도 먼저 꺼냈습니다. 조목사의 '비성경적'부분도 이미 설교에서 언급한적이 있다고 했다.)
목사; "그건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기자; "교회는 왜 몸짓에 치중하는가?"
목사; "우선 진실한 교회(true church)의 개념은 포스트 모던사회와 상충된다. 지금은 성경이란 절대 권위가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사회는 점점 개인화되면서 '나' 만의 세상, 가치, 영성 등을 만들어 낸다. 물질주의에 기반한 소비자적 개념과, 상대적 가치를 바탕으로 개인이 신념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시대가 됐다. <결국 교회는 그 흐름을 쫓다가 세상과 구별되지 못했다>
이제 미국은 기독교의 가치를 잃었다. 그걸 잃는데 200년이 걸린 셈이다. 과거 미국은 기독교가 사회와 문화를 뒷바침했다. 하지만 '기독교 중심국가'란 말이 점점 '기독교적인 문화국가'로 바뀌다가, 이제는 신이교주의(neo-paganism)의 개념으로 까지 변절됐다. 한국은 그 과정을 밟기도 전에 끝난듯하다.
기자; "끝났다는 의미는?"
목사; "한국은 짧은 기독교역사 가운데, 급작스레 교회가 커지면서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 결과 기독교적 가치는 내부적 또는 사회적으로 정착되기도 전에 교회는 힘과 권위만 갖게 되었다. 그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한국교회는 포스트모던이즘의 급격한 물결에 휩쓸리며 <본질을 잃어 갔다.>"
기자; "한국엔 3억달러(약3000억원)짜리 교회가 세워 졌다.
(최근 한국교계의 이슈였던, 오정현목사의 박사학위 논문표절과 서울의 사랑의 교회 건축논란을 설명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정말3억달라가 맞느냐며 몇 번이고 되묻다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 "기독교엔 지금 거대한 건물들이 너무 많다. 대개 교회확장은 목사의 개인적 야심과 연결된다. 많은 경우 목사의 자아가 교회의 크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3억짜리 교회건물을 세우려 했다면 반드시 동기를 철저히 진단하고 성경에 비추어 자신에게 강력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거기다가 만일 학위를 표절로 얻었다면 그의 야심적 성향에 대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기자; "비성경적이란 뜻인가?"
목사; "현재 한국의 물가나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어느 정도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 건물을 지었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가, 차라리 그 돈으로 세상 구석구석에 복음을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용했더라면… 정말 심란하다."
기자: 최근 한인 교계에선 목회자 청빙도 문제였다.
(청빙이 물밑에서 진행되는 점,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인사도 없이 떠나는 행위, 목회자의 상향이동 등 한인교계의 논란 사례를 설명했다.)
목사: "미국 교계도 똑같다. 양떼의 중요성보다 목회자의 개인적 상황이나 야망이 앞서면 그렇게 된다. 어느새 목회자가 왕 또는 유명인사가 되다 보니 교인들도 그런 목사를 찾는다. 바른 청빙은 목회자와 회중들, 청빙한 교회가 투명한 과정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다가 모두가 기쁘게 동의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는 사도행전 20장을 토대로 바울이 모두의 축복 속에 에베소 장로들과 울며 입을 맞추고 떠나는 모습을 예로 들었다.)
기자; "목자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목사; "넓이보다 깊이다. 대형교회건물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더라도 목사의 언변, 영리함, 처세술 등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양 떼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며, 복음 안에서 갖는 깊이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일에 있다"
기자; "한국교회는 젊은 층이 줄고 있다. 이유는?"
목사; "교회는 그들에게 이벤트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단순히 흥미로운 성경이야기가 아닌 교리를 통해 아이 때부터 복음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갖도록 교회와 가정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건 분명히 너무나 힘든 도전이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더욱 막중한 시대가 됐다."
기자; "젊은 층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목사; "교회가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일에만 치중했다.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복음을 최소화 시킨다면, 언젠가 그들은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질문과 함께 회의와 마주하게 된다. 얼마든지 자기 입맛에 맞는 가상의 세계와 상대적 가치를 창조해 내는 젊은 세대에게 '기독교는 세상과 역행해야 하며 교회가 허구가 아닌 진리와 실제적 삶을 나누는 곳임을 알려줘야 한다."
기자; "사람들이 자꾸 교회를 떠나는데?"
목사; "그 질문은 일단 교회에는 진정한 성도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진정한 성도는 바른 교회를 찾아 다닐 수는 있어도 완전히 떠날 수는 없다. 다만 예수를 잘 모르고 성경으로 양육 받지 못했다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부터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본질에는 관심이 없었던거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말> 또는 <알아야 할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해준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