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원래 교회는 재미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은 더욱 그렇습니다.
요즘 여러 교회들에서 교인들에게 재미있는 흥미거리를 제공하려는 것은 세속적인 물결 때문일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특별한 흥미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면 더 이상 자기 교회에 나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위기감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미 도시화 되어있는 우리의 형편에서는, 교회들 간에 상호 비교가 되는 것이 주로 흥미있는 프로그램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시대에는 교회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성화를 해야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이 어린 교인들은 여러 교회들을 비교하며 어느 교회가 더 재미있느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흥미있는 교회로 몰려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의 조건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올바르게 증거되느냐, 성례의 시행이나 권징사역이 제대로 잘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교회의 조건대로 한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미나 흥미는 없습니다.
요즘 설교자들 가운데는 재미있는 설교를 하고자 애쓰는 것을 많이 보게되며, 어린 교인들은 자기를 재미있게 해주면 '은혜로운 설교'라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인들에게 감흥을 일으키고자 애쓰며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성경말씀에 조화되지 않은 예화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교인들을 자기의 언변 속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면 그런 유형의 재미는 전혀 없습니다.
말을 잘하는 설교자의 언변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할 때 우리는 도리어 경건해지고 엄숙해지며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우에 맞지 않은 예이지만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불신자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그들은 제사를 재미있게 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죽은 조상신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그들도 그 시간을 흥미나 재미위주가 전혀 아니며, 그렇게 함으로써 외적인 즐거움을 누리려 하지 않습니다.
전혀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제가 이러한 예를 드는 것은, 가장 올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우리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인간들의 자기 만족을 위한 시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없거나 어린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재미없는 시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재미없는(?) 예배시간을 통해 점차로 말씀을 익혀가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앙이 자라가게 되면 세상사람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즐거움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는 매우 연약한 시대입니다.
많은 어린 교인들이 교회에서 흥미나 재미를 요구합니다.
다른 교회 목사님은 예배시간에 흥미로운 설교를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하는데 우리 교회는 왜 이러냐는 식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교인들의 그러한 비위(?)를 맞추려 하다 보니까 순수한 말씀의 선포가 점차적으로 사라져 가는 안타까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연약한 시대에 살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자로서의 본질적 직분 보다 교인들로부터 유능한 목회자, 설교자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솟아난다는 사실은 실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 시대를 흔히 '인스턴트 시대'라 말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어머니가 정성스레 해주는 밥보다는 방부제 섞인 라면을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슈퍼마켓이나 인스턴트 음식점에 가면 몸에 해로운 방부제가 들어간 인스턴트 식품들이 가득한데 아이들은 왜 그리 해로운 인스턴트 식품만 찾습니까?
어머니가 손수 요리한 무공해 음식은 입 속을 간지려주는 맛이 없고, 가게에서 산 식품들은 몸에 해로운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만족시켜주는 맛이 있으니까 그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상술에 빠진 기업들이 아이들의 입맛을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국민의 참된 건강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더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들은 늘 다툴지도 모릅니다.
인스턴트 식품의 유혹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은 맛있는 인스턴트 식품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될 것이며,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금하고 손수 지은 무공해 음식을 먹이려 할 것입니다.
어머니나 아이들, 모두에게 적잖은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시대 교회는 너무 많은 인스턴트 프로그램들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설교도 그렇고 교회교육도 그러하며 교인상호간의 관계 설정도 그렇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역시 그 가운데 노출되어 있으므로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린 교인들은, 끊임없이 그런 흥미위주의 설교와 프로그램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귀를 솔깃해 할 것입니다.
그들은 왜 우리교회에는 그런 흥미있는 인스턴트성 내용들이 없느냐고 조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된 목회자나 참된 성도들은 끝까지 인스턴트 프로그램들을 눈여겨 지켜보며 주님의 자녀들을 잘 보호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선은 재미있고 즐거울지 모르지만 건강만 해치게 될 것이며 교회가 인스턴트화 될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은 더욱 그렇습니다.
요즘 여러 교회들에서 교인들에게 재미있는 흥미거리를 제공하려는 것은 세속적인 물결 때문일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특별한 흥미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면 더 이상 자기 교회에 나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위기감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미 도시화 되어있는 우리의 형편에서는, 교회들 간에 상호 비교가 되는 것이 주로 흥미있는 프로그램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시대에는 교회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성화를 해야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이 어린 교인들은 여러 교회들을 비교하며 어느 교회가 더 재미있느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흥미있는 교회로 몰려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의 조건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올바르게 증거되느냐, 성례의 시행이나 권징사역이 제대로 잘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교회의 조건대로 한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미나 흥미는 없습니다.
요즘 설교자들 가운데는 재미있는 설교를 하고자 애쓰는 것을 많이 보게되며, 어린 교인들은 자기를 재미있게 해주면 '은혜로운 설교'라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인들에게 감흥을 일으키고자 애쓰며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성경말씀에 조화되지 않은 예화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교인들을 자기의 언변 속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면 그런 유형의 재미는 전혀 없습니다.
말을 잘하는 설교자의 언변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할 때 우리는 도리어 경건해지고 엄숙해지며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우에 맞지 않은 예이지만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불신자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그들은 제사를 재미있게 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죽은 조상신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그들도 그 시간을 흥미나 재미위주가 전혀 아니며, 그렇게 함으로써 외적인 즐거움을 누리려 하지 않습니다.
전혀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제가 이러한 예를 드는 것은, 가장 올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우리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인간들의 자기 만족을 위한 시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없거나 어린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재미없는 시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재미없는(?) 예배시간을 통해 점차로 말씀을 익혀가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앙이 자라가게 되면 세상사람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즐거움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는 매우 연약한 시대입니다.
많은 어린 교인들이 교회에서 흥미나 재미를 요구합니다.
다른 교회 목사님은 예배시간에 흥미로운 설교를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하는데 우리 교회는 왜 이러냐는 식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교인들의 그러한 비위(?)를 맞추려 하다 보니까 순수한 말씀의 선포가 점차적으로 사라져 가는 안타까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연약한 시대에 살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자로서의 본질적 직분 보다 교인들로부터 유능한 목회자, 설교자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솟아난다는 사실은 실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 시대를 흔히 '인스턴트 시대'라 말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어머니가 정성스레 해주는 밥보다는 방부제 섞인 라면을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슈퍼마켓이나 인스턴트 음식점에 가면 몸에 해로운 방부제가 들어간 인스턴트 식품들이 가득한데 아이들은 왜 그리 해로운 인스턴트 식품만 찾습니까?
어머니가 손수 요리한 무공해 음식은 입 속을 간지려주는 맛이 없고, 가게에서 산 식품들은 몸에 해로운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만족시켜주는 맛이 있으니까 그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상술에 빠진 기업들이 아이들의 입맛을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국민의 참된 건강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더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들은 늘 다툴지도 모릅니다.
인스턴트 식품의 유혹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은 맛있는 인스턴트 식품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될 것이며,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금하고 손수 지은 무공해 음식을 먹이려 할 것입니다.
어머니나 아이들, 모두에게 적잖은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시대 교회는 너무 많은 인스턴트 프로그램들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설교도 그렇고 교회교육도 그러하며 교인상호간의 관계 설정도 그렇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역시 그 가운데 노출되어 있으므로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린 교인들은, 끊임없이 그런 흥미위주의 설교와 프로그램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귀를 솔깃해 할 것입니다.
그들은 왜 우리교회에는 그런 흥미있는 인스턴트성 내용들이 없느냐고 조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된 목회자나 참된 성도들은 끝까지 인스턴트 프로그램들을 눈여겨 지켜보며 주님의 자녀들을 잘 보호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선은 재미있고 즐거울지 모르지만 건강만 해치게 될 것이며 교회가 인스턴트화 될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