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
질문 1.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일까요?
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은 다른 교리문답과 달리 하나님의 중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인 ‘위로’에 대해서 먼저 가르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올바른 신앙적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는 신교(개신교)가 개혁의 이름으로 구교(로마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신학사상과 교회의 부패와 싸우던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신교인 종교개혁자들은 올바른 신앙적 기준과 교회의 참된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때였습니다. 그들은 참된 진리를 세우기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았고, 고난도 기쁨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참된 진리인 복음만이 그들의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과 개혁신앙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연 무엇과 싸우고 있으며, 또한 무엇으로 진정한 위로로 삼고 있습니까?
질문 1.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일까요?
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은 다른 교리문답과 달리 하나님의 중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인 ‘위로’에 대해서 먼저 가르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올바른 신앙적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는 신교(개신교)가 개혁의 이름으로 구교(로마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신학사상과 교회의 부패와 싸우던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신교인 종교개혁자들은 올바른 신앙적 기준과 교회의 참된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때였습니다. 그들은 참된 진리를 세우기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았고, 고난도 기쁨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참된 진리인 복음만이 그들의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과 개혁신앙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연 무엇과 싸우고 있으며, 또한 무엇으로 진정한 위로로 삼고 있습니까?